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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영화 [홍등] 장예모 감독과 색채심리학이 만나다


영화 [홍등(Raise The Red Lantern)]




장예모 감독의 1992년 영화, 홍등입니다.

1991년 제 48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홍등은 붉은 등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홍등은 봉건사회 중국 여성들의 삶을 대변하는 물건으로 등장합니다.


홍등에 붉은 불이 켜지면 그 날은 그 홍등의 주인인 여인이 대감에게 선택된 날입니다

홍등이 켜지지 않은 나머지 여인들은 그저 독수공방을 할 뿐입니다

여자주인공(공리)는 어린나이에 나이든 대감의 네번째 부인으로 시집을 오게 됩니다

그녀는 서로를 못 믿고 서로를 증오하는 여러 부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은 미치고 마는 캐릭터입니다.

공리는 처음 멋모르고 시집 온 어린 소녀부터 점차 집안의 생리를 알아가는 모습, 결국 자신이 그저 노리개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미치는 모습까지 다양한 연기를 소화합니다.


장예모 감독은 이 영화에서 색깔을 굉장히 의미있게 사용했습니다.

영화를 한 번 보신 분들은 이 리뷰를 보시고 다시 한 번 영화를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여자주인공 송련(공리)가 계모의 강요에 못 이겨 처음 진 대감에게 시집 온 날은 여름이었습니다

여름 특유의 밝은 색채에 빛이 많은 느낌이 영화에서 드러났습니다

진대감의 네번째 첩이 된 그녀의 방은 노랑과 검정, 그리고 이 영화의 주 색채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색으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방이 붉은 이유는 홍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 하녀가 그녀의 발을 씻기고 안마를 해 주는데 그녀의 발을 씻는 물이 검정색이었습니다

물의 색이 원래 검정이었는지 아니면 그림자가 져서 그렇게 보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감독이 검게 보이는 물로 나타내고자 했던 것은 앞으로 전개될 송련의 암울한 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진 대감의 집은 철저히 봉건적인 가문으로, 여성들은 모든 삶이 진 대감에 의해 좌지우지 됩니다.

진 대감이 여러 첩들 중 하나를 선택해 잠자리를 가지면 하인들은 그 방 문 앞에 달린 홍등에 불을 켭니다.

홍등은 그녀가 오늘 선택받았다는 것을 다른 첩들이 알 수 있게 하는 요소로 등장합니다.

다른 첩들과는 다른 위치라는 느낌을 받게 하는 홍등때문에 집안의 여자들은 서로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모략하는데 삶을 소비합니다.

홍등이 켜진 다음 날, 진 대감을 모셨던 여인은 발 마사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송련 또한 진 대감과 처음 잠자리를 하고 발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발마사지를 받으며 묘한 희열을 느낍니다.

어느새 그녀도 홍등 경쟁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송련이 진대감과 잠자리를 하는 침대에는 하얀 베일이 씌워져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불투명한 미래를 나타내는 요소일 지도 모릅니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진 대감의 사랑을 받기 위해, 임신하지 않았는데도 임신한 척 모두를 속입니다.

가짜임신기간 동안 진짜 임신을 해서 모든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지요.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미래가 어찌될 지도 모르면서 도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결국 그녀는 가짜임신이 탄로나고, 자신의 방 안에 있던 모든 홍등을 사용할 수 없게 봉해지는 벌을 받게 됩니다.


홍등을 봉하는 천은 짙은 군청색입니다.

이 영화에서 붉은 색 만큼 많이 쓰이는 색이 바로 푸른색인데요.

홍등을 봉하는 푸른색은 송련의 삶이 앞으로 순탄하지 않을 것을 예고합니다.

보통 색채심리학에서의 푸른색은 부정적인 의미가 많은데 특히나 이 영화에서의 푸른색은 탁하고 어둡게 표현됩니다.

이 영화에서 특히나 푸른색으로 많이 표현되는 시간이 바로 새벽입니다.

초반, 이 영화에서 새벽은 진 대감의 셋째부인이 송련을 방해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시간입니다.

송련은 그녀의 노래소리떄문에 머리가 아프고 짜증이 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예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중후반부에서 셋째부인은 불륜이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는데, 그 시간이 바로 새벽입니다.

그녀는 죽을 떄 푸른색 신발을 신고 죽습니다.

이처럼 장예모 감독은 영화에서 푸른색을 암울한 사건들의 상징처럼 사용합니다.

모든 부정적인 상황에서 푸른색이 사용되는데, 송련의 하녀인 연아가 벌을 받아 죽는 순간까지도 배경색은 푸른색입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처음 등장하는 여름부터 셋째부인이 죽은 겨울까지, 그리고 그 다음해 여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겨울은 하얀 눈들이 가득 쌓인 가운데 불행한 일들의 반복으로 계속해서 푸른색으로 표현됩니다

셋째부인이 죽은 후 미쳐버리고 만 송련이 셋째부인의 방에 홍등을 켜 놓는 장면을 보면 방 안의 벽은 푸른색인데 거기에 붉은 등이 색채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불행을 상징하는 푸른색에 봉건시대 여인들의 삶을 반영하는 붉은 등의 조화는 결국 이 집에 있는 여인들의 불행한 운명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푸른색은 송련이 행복하던 순간에도 등장합니다

송련이 거짓 임신을 하고 진 대감으로부터 온갖 호사를 누릴 때 입던 옷이 바로 푸른색입니다.

여기서의 푸른색도 결국은 거짓 임신을 들키고 홍등이 봉해지는 송련의 미래를 상징하거나, 아니면 거짓 임신이 틀킬까봐 불안한 송련의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영화 홍등에서는 여러 색채를 사용해서 배경인물들의 심리를 반영하기도 하고 또는 미래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장예모 감독이 색을 영화에서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살펴보다보면, 영화를 좀 더 흥미롭게 볼 수 있고 또한 영화를 이해하기가 더욱 쉬운 것 같습니다

등 속에 빛이 갖힌 홍등처럼 집 속에 갖힌 여인들의 삶이 너무 슬픈 영화였습니다.